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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고고학 이야기

클레오파트라는 과연 흑인인가? (1)

by 곽민수 2023. 5. 26.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가 불러일으킨 논란

클레오파트라가 다시 화제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 7세(재위 기원전 51-30년)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퀸 클레오파트라 (Queen Cleopatra)>의 공개를 앞두고 연일 클레오파트라가 많은 이들의 화두에 오르고 있습니다. 논란은 이 작품 속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역할을 흑인 혼혈 배우인 아델 제임스(Adel James)가 맡은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캐스팅이 실제의 역사와 상당히 다른, 일종의 역사왜곡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죠.

 


실제로 이집트 시민사회의 반발도 꽤나 거센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16일, 마흐무드 알-세마리(Mahmoud al-Semary)라는 이름의 변호사는 이 시리즈의 이집트 내 상영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이 이집트의 언론법을 위반할 뿐더러 이집트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려고 든다며 불만을 표했습니다. (아래의 링크는 관련 BBC 기사)

https://www.bbc.com/news/world-middle-east-65322821

더불어, 지난 무바라크 정권 시절 이집트 고고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자히 하와스(Zahi Hawass) 역시도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라는 건) 완전히 거짓이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 출신이었고, 이것은 그의 피부 색깔이 검지 않고 밝았다는 것을 뜻한다. 흑인들이 이집트를 통치했던 것은 25왕조 시대 뿐이다. 넷플릭스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기원이 흑인과 관련이 있다는 실제 사실과 다른 기만적인 내용을 퍼뜨리려고 한다."

 

고 말하며, 이집트 시민들에게 국제적인 영향력을 갖춘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에 대해 저항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하와스가 말한대로 이집트는 25왕조 시절 동안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흑인이라고 할 수 있는 누비아인들에 의해서 통치되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에는, 오래도록 (대략 2300-2400년 가량) 이집트에게는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누비아가 역으로 이집트를 정복하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죠. 약 1세기 동안 자연스럽게 파라오는 물론이고 지배계층이 누비아인들로 교체되었는데, 이 누비아인들이 바로 일반적으로 흑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25왕조 시대는 기원전 747-664년 경으로, 클레오파트라의 시대보다는 700년 가량 앞선 시대입니다.

 

자히 하와스(좌)와 버락 오바마. 하와스는 자주 청자켓을 입고 중절모를 쓴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걸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에 방문하는 VIP들에게 이집트의 유적지를 소개하는 역할을 자주 맡습니다.


그런데 하와스의 말은 언론 지면에서 자주 인용되기는 하지만 언제나 조금 필터링을 해서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분이 세계적인 이집트 고고학자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엄청나게 많은 고고학적 업적들을 남긴 것도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와스는 학자인 것과 동시에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그의 말에는 대체로 정치적 백터가 강하게 걸려 있고, 그는 언제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담아서 발언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 이야기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굉장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이 있는 메디넷 하부 인근에서 대규모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던 것이죠. 이집트에서 온전한 상태의 주거 유적이 발견되는 경우는 그리 많이 않기 때문에 이 소식은 즉각적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집트 조사팀을 이끌었던 하와스는 이 유적에 대해서 격양된 목소리로,

 

“최초의 발견이다”

 

“서구 고고학자들은 이런 유적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같은 말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언론을 통해서 대서특필 되었고요.

 

메디넷 하부 인근에서 발견된 주거 유적. 파형 벽체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사실 NO-POTHO라는 글자도....


1930년대에 확인된 주거 유적. 역시나 파형 벽체가 확인됩니다. (사진 출처: Robichon, S. and Varille, A. (1936) Le Temple du Scribe Royal Amenhotep, Fils de Hapou, Le Caire, Institut français d'archéologie orientale 11.)



Robichon, S. and Varille, A. (1936) Le Temple du Scribe Royal Amenhotep, Fils de Hapou, Le Caire, Institut français d'archéologie orientale 11. 에 수록된 도면. 좌측에 하늘색으로 표현된 부분에서 파형 벽체가 보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여기에 대해서 몇몇 연구자들이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거 1930년대 프랑스 팀이 인근에서 발굴한 주거지의 흔적과 좀 비슷한데? 특히 파형으로 만들어진 벽체가 완전히 똑같아 보이고 말이야”라는 식으로 말이죠. 실제로 1930년대 출간된 발굴 보고서에서는 하와스가 2021년에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구조물들과 거의 완전하게 같은 파형 벽체들이 확인됩니다. 하와스가 1930년대의 발굴 사례를 몰랐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여겨지는 만큼, 그가 사용했고, 언론에서 그대로 인용했던 ‘최초의’ 같은 수식어는 일종의 선전용 멘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의심이 여지 없는 대가 레벨의 굉장한 연구자이지만, 이집트 문화재와 관련해서는 엄청난 권력자이자 동시에 정치적 퍼포먼스가 뛰어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는 그의 말 자체를 근거로 삼아서 어떤 이집트학적 판단을 내릴 때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도 저는 하와스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2022년 11월에는 운좋게 선생님의 연구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일이었죠. (사진 출처: 곽민수)


클레오파트라의 역사적 배경

그럼 다시 클레오파트라 이야기로 돌아가죠. 아주 짧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가 일반적인 의미의 흑인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그가 흑인 혹은 흑인 혼혈이었을 가능성도 아주-아주-아주 조금은 있다!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드로스 3세(기원전 356-323년)가 페르시아와의 전쟁 과정 중에 이집트에 들어온 것은 기원전 332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를 해방시키고 이집트인들에게 파라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다시 동방원정을 떠난 알렉산드로스는 결국 페르시아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자신의 대제국을 완성했죠. 그런데 이 위대한 영웅은 제국이 완성된 직후에 사망을 합니다. 마치 이룰 것이 더 이상 없다고 말하며 스스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알렉산드로스는 영원히 신화로 남게 되었습니다.

 

파라오로 그려진 알렉산드로스. 우측의 인물이 알렉산드로스이고 좌측은 아멘 신입니다. 룩소르 신전 지성소. (사진 출처: 곽민수)


그러나 신화가 된 그 자신과는 달리, 그의 사후 현실 세계에서는 격렬한 투쟁의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제국은 디아도코이(Διάδοχοι)라고 불리는 그의 가신들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갈기갈기 찢어지게 되는데, 그 중에서 이집트를 장악한 것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이기도 했던 프톨레마이오스였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렇게 프톨레마이오스 1세(재위 기원전 305-285년)로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되었고, 그 이후 약 300년 동안 그의 후손들이 이집트를 통치하는 시대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 마케도니아 계통, 조금 넓게는 그리스 계통의 왕조를 왕조의 창시자의 이름이자 그의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오르는 파라오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했던 이름이기도 한 ‘프톨레마이오스’를 따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라고 부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였습니다. 그를 그리스 계통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론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파라오들도 분명히 이집트의 파라오였습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과거의 토착 이집트인 파라오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이집트를 통치했습니다. 당연히 기존의 이집트적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애를 쓰기도 했고요. 클레오파트라의 경우에도 '웨레트-네브트-네페루-아케트-세흐'라는 고대 이집트어로 된 이름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꽤나 훌륭한 모습으로 남겨져 있는 신전들, 이를테면 필라에의 이시스 신전,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 등은 모두 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파라오들의 명에 따라 세워진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를 출신 배경으로 갖고 있던 이들은 많은 부분에서 이집트화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문화적으로 그리스적 정체성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왕조의 파라오들 대부분이 갖고 있었던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도 그렇고, 또 왕실 여성들이 자주 사용한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 역시 이집트 식이 아닌 그리스 식이라는 사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 (사진 출처: 곽민수)
프톨레마이오스 3세. 베를린 신 박물관. (사진 출처: 곽민수)

클레오파트라 7세는 역시도 그리스 계통 왕조의 파라오였고, 그런 만큼 그리스 문화적 배경 속에 살아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부계 혈통은 분명히 그리스 계통이었다고 아주 단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요. 클레오파트라가 전형적인 백인에 가까운 겉모습을 갖고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흑인으로 묘사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퀸 클레오파트라>에 앞서서 만들어진 클레오파트라 관련 작품들에서는 전형적인 백인 배우들이 클레오파트라로 분했습니다. 작품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그 작품들을 하나하나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1899년, 1908년, 1912년, 1917년, 1924년, 1934년, 1935년, 1943년, 1945년, 1947년, 1953년, 1954년, 1957년, 1962년, 1963년(이 해에는 무려 3편), 1964년, 1968년, 1970년(이 해에는 2편), 1972년, 1992년, 1999년, 2002년, 2005년, 2006년에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는 작품이 제작되었다는 정도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숫자이고, 그 만큼 클레오파트라는 오래도록 서구인들에게 관심이 되어오고 있다는 이야기겠죠.

 

클레오파트라로 분한 비비안 리.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1945년 작.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은 비비안 리가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았던 1945년 작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Caesar and Cleopatra)>와 엘리제바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로 분한 1963년 작 <클레오파트라(Cleopatra)>, 그리고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을 맡은 2002년 작 <아스트릭스 2: 미션 클레오파트라(Asterix & Obelix: Mission Cleopatra)>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비안 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모니카 벨루치는 모두 다 전형적인 백인 배우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받아들이는 클레오파트라가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에는 약점이 조금 있습니다. 그 약점은 클레오파트라의 모계 혈통이 어떠했는지가 분명하지가 않다는 점이죠.


클레오파트라의 모계 혈통

클레오파트라의 할머니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재위 기원전 80-51년)가 사생아 혹은 서자 취급을 받았던 것을 보면 적어도 클레오파트라의 할머니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일원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컨대, 왕족이 아닌 그리스 계통의 인물이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집트인이나 그 이외 다른 지역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실 전시. (사진 출처: 곽민수)


클레오파트라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명성을 고려할 때 꽤나 놀라운 일이죠. 그리스 혈통을 갖고 있는 클레오파트라 트뤼파에나(Cleopatra V Tryphaena)가 그의 어머니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이 계보에도 불확실한 면이 많습니다. 또 일설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의 어머니는 이집트 혈통을 갖고 있는 사제 가문 출신일 수도 있다고 하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클레오파트라를 전형적인 서양인으로 묘사하는 것은 고증의 차원에서는 정확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는 파라오들이 왕실 바깥 출신의 첩을 두는 것에 대해서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고, 서출들에 대한 차별도 거의 없었습니다. 왕실 내에서 계속 유지되어 오던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딱 클레오파트라의 어머니나 할머니 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프톨레마이오스 1세 이래로 클레오파트라의 시대까지 3세기 가량 왕조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왕실 내에서 모계를 통한 혼혈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https://alook.so/posts/q1tlorx?utm_source=user-share_6mt0Pz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들 가운데는 그리스어와 이집트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흔치 않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어와 이집트어 이외에도 히브리어, 시리아어, 페르시아어 등 총 7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가 특별한 언어적 재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문화 이외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리스가 아닌 이집트나 다른 지역 출신이었다면 분명히 그들을 통해서 타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 친숙해질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 이런 사실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인종적 정체성이 생각보다는 훨씬 더 복잡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만듭니다.

이제 아무래도 클레오파트라를 단순히 그리스-마케도니아 계통의 혈통만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말하기가 조금은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단계에서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단정적으로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 혈통의 백인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나 반증 가능성이 큰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라는 주장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죠.


이 글은 '얼룩소'에 쓰여진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얼룩소의 본 글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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